•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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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무엇보다도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과 신비함과 오묘함을 장엄하게 울리고 있다. 이 창조야말로 기독교만의 위대한 선물이요, 재산이요, 능력이요, 소망이다. 이 말은 기독교의 모든 것은 창조로부터 시작을 해서, 창조의 본래의 맛과 멋을 드러내며, 결국은 이 창조의 완성,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완성된 하나님 나라(“Not yet”)로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계속해서 강조해 왔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하나님의 창조, 곧 기독교의 유일한 창조의 사실을 그대로 통째로 이해하고 수용하여 모든 것의 출발점을 “신비, 위대함, 능력, 소망, 좋음” 등에 두고, 부요함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의 ‘위대함’을 비롯한 ‘좋음, 긍정’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고, 온갖 ‘좋지 않음과 부정’의 잔재들만을 풍성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에 의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를 펼치든지 간에 ‘좋음과 긍정’의 말을 하기보다는 ‘징벌, 파괴, 고통’ 등의 채찍을 들고서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들이 기독교의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그 좋은 말들(“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복 받습니다”)로 화려하게 수를 놓으면서도, 어렵게, 정말 어렵게 들어온 “천하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해서 마구, 마구 징벌의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왔으니 정말 잘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칭찬만 해줘도 부족할 텐데!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혹자들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어렵게 들어온 사람들일지라도, 이제 기독교의 그 혹독한 채찍(율법준수)을 내려쳐야만 제대로 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대로 날라 가버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들도 다하지 못하는 무거운 이상한 십자가(율법의 저주)를 지우고 있다. 


물론 필자가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무시하거나, 폐기시키거나, 등한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복음의 은혜로 충만한 하나님나라의 부요함을 맛보게 하면, 성령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더욱 성숙되게 하시고, 더욱 새롭게 하시고, 완성된 하나님나라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달려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거룩한 일(성화)도 인위적인 권모술수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이시다. 그러므로 아무 염려하지 말고 기독교만의 위대한 복음, 곧 회복(구속)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도록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창1-2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진수를 풍성하게 맛보는 일을 잠시 보류하고, 이번에는 창조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정리하는 일들을 하기로 한다.


창1:1절 하반절(1b/학문적인 용어, 원문을 중심으로 구분함)부터 시작되는 창조의 사실은 “(그) 하늘과 (그) 땅을.....!”이다. 필자가 “(그) 하늘과 (그) 땅을”이라고 한 것은 우리 말 성경에는 보이지 않지만, 원문에는 정관사인 “그”(· ה)가 “하늘”과 “땅”에 모두 붙어 있다(접두어). 


여기에서 잠간 히브리어 원전(BHS)과 우리말 성경을 비롯한 많은 번역 성경들의 섬세한 차이점에 대해서 잠간 언급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제기하는 문제인, 우리말 성경이나 다른 번역 성경들이 히브리어 원전에 기록된 여러 가지의 요소들을 정확하게,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정관사, 접속사, 감탄사, 성(gender), 수(number), 관용어,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장르의 명확한 구분, 그리고 히브리어의 섬세함 등의 좀 더 세밀한 요소들이 생략되거나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성경(다른 복음적인 번역 성경들)이 잘못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의 복음을 정말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언급한 “부족함”이란, 보다 더 섬세하고, 풍요롭고, 깊은 의미들을 맛보는데 아쉬움을 피력한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창1:1절 하반절이 “천지를”(하늘과 땅)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대로 읽게 된다면 무언가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 않으며, 혼동이 일어나게 된다. 즉 이 “하늘과 땅”(창1:1b)이 v.8의 “하늘”과 v.10의 “땅”과는 어떤 관계인지 알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본문을 창조의 “서론”이라든지, 또는 “제2의 창조”라는 등의 무익하고 위험한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창1:1절에서부터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창조, 기독교의 위대한 유산을 하나님의 말씀, 처음부터, 첫 단어에서부터 그대로 누릴 줄 알아야 한다.


히브리어 원전에 “(그) 하늘과 (그) 땅”이라고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이 땅에 국한된 것만이 천상계와 지상계의 모든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위대한 사실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물론 천상계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창1:2절에서 증거가 되겠지만, 천상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많이 알려주시지 않으셨으며, 더욱이 타락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제한적인 정보 외에는 허락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명백하게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바울이다. 바울은 고후12장에서 “셋째 하늘”을 체험한 간증을 전하면서, “어떤 사람”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체험을 하였지만,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며,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받지 않았다”(TNIV/고후12:4) 라고 하면서 그 큰 체험을 마무리하면서 “오직 약한 것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서 천상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되는 완성된 하나님나라를 대망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삶을 풍성히 누리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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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늘과 (그) 땅을.....!” (창1: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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