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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의 사명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의 사명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에게 전도했더니, 멀쩡한 젊은 사람이 참 안 됐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열심히 전도하는데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물었더니, “전도도 좋지만 그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 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평생 전도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결심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내가 예수 믿을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와서 교회에 가자고 전도해서 귀찮아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낮에만 얼른 교회에 다녀옵니다.” 말하는 것이었다. 참 황당한 대답이었다. 그분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예수는 내 영혼이 살려고 믿는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하든 알려주어 한 영혼이라도 살리려는 것이 전도다. 어릴 적에 임진강에서 아이들이 수영할 때 보면, 처음에는 여러 명이 자신감이 넘쳐 임진강 깊은 데까지 헤엄쳐 간다. 하지만 그중 어떤 아이는 돌아올 힘이 없어서 임진강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형들이 가서 그 아이를 건져서 데리고 나온다. 자기 생각으로는 자신 있게 헤엄쳐서 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힘으로 나올 수 없을 때는 누군가가 그를 건져 와야 한다. 이처럼 인간도 잘 먹고 좋은 집 살고 잘 입으면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는 줄로 착각한다. 하지만 인생은 죄 가운데 빠져서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구원받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들을 건져내려고 물로 뛰어들 듯 전도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세 가지 어려운 사명이 있는데 첫째 자기 영혼을 지키는 것, 둘째 남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 셋째 맡은 사명을 죽도록 감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전도를 사명으로 알고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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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6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예수 피를 전하는 교회
    예수 피를 전하는 교회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 나라가 믿는 자들 맘속에 세워진다. 눅17:21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믿는 성도들은 ‘내 영혼이 은총 입었다’는 말을 자주한다. 이 말을 영적으로 바꿔 말하면, ‘악한 마귀에게 결박당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에 묶였던 나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죗값의 형벌을 풀어 주셔서 내가 자유를 얻었다’는 말이다. 즉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죄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의 피를 만날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명예와 권세를 가진 자도,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 자도 주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죄를 들고 나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라고 죄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님의 피 소리가 없어졌다. 회개, 마귀, 사단, 귀신, 죄, 저주,질병, 불가능 문제, 성령, 영혼구원,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교회에 이런 이야기만 없으면 악한 영은 언제든지 사람들을 지옥에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짓게 하는 자가 마귀이기 때문에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죄를 지적하는 소리요, 회개하라는 소리다. 또한 싫어하는 소리가 죄를 사하는 예수님의 피 소리다. 그러므로 언제나 “예수님 믿으면 죄 사함 받는다, 마귀 사단 귀신을 이긴다, 십자가의 피 공로 앞에 회개하면 의로워져서 천국 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고 교회 강단에서는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들어야 할 복음이다. 죄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 공로, 천국과 지옥 메시지를 전하고 가르치는 곳이 교회요, 예수 피를 만나 죄에서 나오게 하고, 마귀와 지옥에서 해방해 주는 곳이 교회다. 그리고 성령을 충만하게 모시게 해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영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교회다. 마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오늘날 이 땅 모든 교회가 예수님의 생명의 피 소리를 전하여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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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9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넘치는 생명
    넘치는 생명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생명의 피로 사하여 생명을 부여하셨고 자기 육체에 잔인한 매를 맞으시고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 주셨다. 주님은 이처럼 넘치는 생명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셨다. 지금도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난, 불치의 병에서 고침 받고, 그 영혼은 생명을 풍성히 얻는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생명은 풍성하다. 성경 막 10:45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다. 요10;10에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교회에서도 장로, 권사, 집사가 예수의 정신으로 구령의 열정을 품고 사랑하면 수많은 영혼이 살아난다. 이 같은 사랑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생명 말씀으로 영혼이 살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불타는 사명으로 직분을 감당한다. 자연스럽게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예수의 마음이 그들에게도 나타난다. 농부가 씨를 뿌린 다음에 거름을 주고 김을 매며 곁가지를 잘라 주는 목적은 가을에 열매라는 풍성한 부유를 얻기 위해서다.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는 목적도 수많은 생명을 끊임없이 살리려는 목적이다. 우리의 사랑에는 꼭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아 풍성한 생명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있다. 그래서 성도간에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는 부흥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의 사랑으로 힘쓰는 교회, 영혼을 살리려는 관심 갖는 교회에 더 많은 영혼을 맡기신다.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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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2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감사, 절대 감사
    감사, 절대 감사 인간은 주 예수님의 은혜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주 예수님은 그런 인간이 주 예수님의 은혜로 살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살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은혜로 사는 자는 누구든 한없는 주 예수님의 사랑에 제한 없는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은혜 받을 자로 재창조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만일 돼지로 태어났다면 8개월만 되어도 잡아먹히고 닭으로 태어나면 1개월 키우고 삼계탕 집으로 가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영원히 사는 영적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주 예수님을 떠나 지옥을 향해 가는데 우리는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을 향해 달려가니 모든 일을 생각할 때 절대 감사밖에 없다. 주 예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인간만큼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 예수님께 불순종하고, 주 예수님의 품을 떠나고, 주 예수님의 맘을 썩이는 피조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 교회 앞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소나무를 보면 항상 봐도 변덕이 없다. 변덕 떠는 것이 죄인데 말이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두고 끝없이 사랑하신다.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감사로 시작된다. 주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만나기 시작하고 인간은 주 예수님을 감사로 만나기 시작한다. 그 크신 주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주 예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은혜 베푼 자를 찾는다면서 우상에게 절하며 섬기는 어리석은 모습을 바라볼 때 주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도 주 예수님은 참으신다. 우리에게 허락한 70년, 80년의 인생 안에 돌아오기를 끝까지 참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는 지난해 보다, 지난달 보다, 지난주 보다 감사의 가치를 높이고 사는 절대 감사는 자가 되자.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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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6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내 구세주 예수가 화제다
    내 구세주 예수가 화제다 오늘도 전진기도회의 나의 설교 제목은 ‘오직 예수’이다. 은혜를 체험한 후부터 지금까지 내 설교 화제와 주인공은 늘 ‘예수’다. 내 목회와 복음을 증거 하는 동안 내 안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분이 예수님이시다. 나를 항상 지배적으로 붙드시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목회자라면 삶의 가장 큰 화두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거듭난 그날, 성령으로 충만했던 그날, 내가 예수로 구원 얻은 그날 일이다. 예수는 자기 살을 찢고 피를 쏟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시게 하셨다. 나를 영원한 멸망 지옥에서 건지고 영생 천국을 주시고 소망을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을 내 안에 예수 흔적을 가진 사람으로 예수가 주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으로 인생 최고의 화두가 예수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의 화두는 더 이상 없다. 어떻게 하면 육신을 즐겁게 하며 육신의 쾌락을 위한 삶이 화제이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예수 없는 휴일로 전락한 세상의 문화에 익숙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믿음을 통해 나를 영원히 붙들고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임을 고백하며 지금까지 내 인생의 화두도 예수임을 고백하며 살자. 앞으로 남은 목회의 화두도 “내 구세주 예수가 되게 하겠다” 하는 삶으로 예수로 절정을 이루는 생활이 되었으면 한다. 내 구세주 예수가 우리 사이에 더 많은 화제가 되기를 바란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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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9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예수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예수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인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역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 창세기를 시작으로 침례 요한의 예수를 향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외침을 거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은 시작도 예수님이 마지막도 예수님이시다. 구약이 오실 메시아로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면 신약 전체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재림 예수님만이 우리에 대한 확실한 하나님의 구원의 해결책이다. 지금은 예수님의 은혜는 천지를 진동할 만큼 넘쳐 나는 말은 많은데 ‘그 은혜를 추수하고자 하는 사람과 진실 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열정의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죄로 오염되고 혼탁해진 세상 속에서 넓은 길을 두고 예수님이라는 좁은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시간이 없다’라는 한마디로 예수님이라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세주에 최고의 축복잔치를 거절하고 있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북을 치고 장구를 쳐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적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전 미문 앞에서 손을 벌리며 은과 금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해 ‘나는 네게 줄 은도 금도 없다. 내게 있는 것은 예수님 이름뿐이다. 그 예수님 이름으로 걸으라’는 베드로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은과 금이 아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뿐이다. 우리의 일생을 통해 ‘내가 가진 것은 구세주 예수 이름 밖에 없다’라고 말 한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영원토록 할 말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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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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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의 사명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의 사명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에게 전도했더니, 멀쩡한 젊은 사람이 참 안 됐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열심히 전도하는데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물었더니, “전도도 좋지만 그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 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평생 전도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결심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내가 예수 믿을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와서 교회에 가자고 전도해서 귀찮아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낮에만 얼른 교회에 다녀옵니다.” 말하는 것이었다. 참 황당한 대답이었다. 그분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예수는 내 영혼이 살려고 믿는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하든 알려주어 한 영혼이라도 살리려는 것이 전도다. 어릴 적에 임진강에서 아이들이 수영할 때 보면, 처음에는 여러 명이 자신감이 넘쳐 임진강 깊은 데까지 헤엄쳐 간다. 하지만 그중 어떤 아이는 돌아올 힘이 없어서 임진강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형들이 가서 그 아이를 건져서 데리고 나온다. 자기 생각으로는 자신 있게 헤엄쳐서 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힘으로 나올 수 없을 때는 누군가가 그를 건져 와야 한다. 이처럼 인간도 잘 먹고 좋은 집 살고 잘 입으면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는 줄로 착각한다. 하지만 인생은 죄 가운데 빠져서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구원받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들을 건져내려고 물로 뛰어들 듯 전도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세 가지 어려운 사명이 있는데 첫째 자기 영혼을 지키는 것, 둘째 남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 셋째 맡은 사명을 죽도록 감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전도를 사명으로 알고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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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6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예수 피를 전하는 교회
    예수 피를 전하는 교회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 나라가 믿는 자들 맘속에 세워진다. 눅17:21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믿는 성도들은 ‘내 영혼이 은총 입었다’는 말을 자주한다. 이 말을 영적으로 바꿔 말하면, ‘악한 마귀에게 결박당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에 묶였던 나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죗값의 형벌을 풀어 주셔서 내가 자유를 얻었다’는 말이다. 즉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죄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의 피를 만날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명예와 권세를 가진 자도,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 자도 주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죄를 들고 나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라고 죄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님의 피 소리가 없어졌다. 회개, 마귀, 사단, 귀신, 죄, 저주,질병, 불가능 문제, 성령, 영혼구원,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교회에 이런 이야기만 없으면 악한 영은 언제든지 사람들을 지옥에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짓게 하는 자가 마귀이기 때문에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죄를 지적하는 소리요, 회개하라는 소리다. 또한 싫어하는 소리가 죄를 사하는 예수님의 피 소리다. 그러므로 언제나 “예수님 믿으면 죄 사함 받는다, 마귀 사단 귀신을 이긴다, 십자가의 피 공로 앞에 회개하면 의로워져서 천국 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고 교회 강단에서는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들어야 할 복음이다. 죄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 공로, 천국과 지옥 메시지를 전하고 가르치는 곳이 교회요, 예수 피를 만나 죄에서 나오게 하고, 마귀와 지옥에서 해방해 주는 곳이 교회다. 그리고 성령을 충만하게 모시게 해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영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교회다. 마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오늘날 이 땅 모든 교회가 예수님의 생명의 피 소리를 전하여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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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9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넘치는 생명
    넘치는 생명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생명의 피로 사하여 생명을 부여하셨고 자기 육체에 잔인한 매를 맞으시고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 주셨다. 주님은 이처럼 넘치는 생명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셨다. 지금도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난, 불치의 병에서 고침 받고, 그 영혼은 생명을 풍성히 얻는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생명은 풍성하다. 성경 막 10:45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다. 요10;10에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교회에서도 장로, 권사, 집사가 예수의 정신으로 구령의 열정을 품고 사랑하면 수많은 영혼이 살아난다. 이 같은 사랑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생명 말씀으로 영혼이 살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불타는 사명으로 직분을 감당한다. 자연스럽게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예수의 마음이 그들에게도 나타난다. 농부가 씨를 뿌린 다음에 거름을 주고 김을 매며 곁가지를 잘라 주는 목적은 가을에 열매라는 풍성한 부유를 얻기 위해서다.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는 목적도 수많은 생명을 끊임없이 살리려는 목적이다. 우리의 사랑에는 꼭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아 풍성한 생명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있다. 그래서 성도간에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는 부흥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의 사랑으로 힘쓰는 교회, 영혼을 살리려는 관심 갖는 교회에 더 많은 영혼을 맡기신다.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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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2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감사, 절대 감사
    감사, 절대 감사 인간은 주 예수님의 은혜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주 예수님은 그런 인간이 주 예수님의 은혜로 살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살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은혜로 사는 자는 누구든 한없는 주 예수님의 사랑에 제한 없는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은혜 받을 자로 재창조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만일 돼지로 태어났다면 8개월만 되어도 잡아먹히고 닭으로 태어나면 1개월 키우고 삼계탕 집으로 가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영원히 사는 영적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주 예수님을 떠나 지옥을 향해 가는데 우리는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을 향해 달려가니 모든 일을 생각할 때 절대 감사밖에 없다. 주 예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인간만큼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 예수님께 불순종하고, 주 예수님의 품을 떠나고, 주 예수님의 맘을 썩이는 피조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 교회 앞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소나무를 보면 항상 봐도 변덕이 없다. 변덕 떠는 것이 죄인데 말이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두고 끝없이 사랑하신다.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감사로 시작된다. 주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만나기 시작하고 인간은 주 예수님을 감사로 만나기 시작한다. 그 크신 주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주 예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은혜 베푼 자를 찾는다면서 우상에게 절하며 섬기는 어리석은 모습을 바라볼 때 주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도 주 예수님은 참으신다. 우리에게 허락한 70년, 80년의 인생 안에 돌아오기를 끝까지 참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는 지난해 보다, 지난달 보다, 지난주 보다 감사의 가치를 높이고 사는 절대 감사는 자가 되자.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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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6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내 구세주 예수가 화제다
    내 구세주 예수가 화제다 오늘도 전진기도회의 나의 설교 제목은 ‘오직 예수’이다. 은혜를 체험한 후부터 지금까지 내 설교 화제와 주인공은 늘 ‘예수’다. 내 목회와 복음을 증거 하는 동안 내 안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분이 예수님이시다. 나를 항상 지배적으로 붙드시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목회자라면 삶의 가장 큰 화두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거듭난 그날, 성령으로 충만했던 그날, 내가 예수로 구원 얻은 그날 일이다. 예수는 자기 살을 찢고 피를 쏟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시게 하셨다. 나를 영원한 멸망 지옥에서 건지고 영생 천국을 주시고 소망을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을 내 안에 예수 흔적을 가진 사람으로 예수가 주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으로 인생 최고의 화두가 예수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의 화두는 더 이상 없다. 어떻게 하면 육신을 즐겁게 하며 육신의 쾌락을 위한 삶이 화제이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예수 없는 휴일로 전락한 세상의 문화에 익숙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믿음을 통해 나를 영원히 붙들고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임을 고백하며 지금까지 내 인생의 화두도 예수임을 고백하며 살자. 앞으로 남은 목회의 화두도 “내 구세주 예수가 되게 하겠다” 하는 삶으로 예수로 절정을 이루는 생활이 되었으면 한다. 내 구세주 예수가 우리 사이에 더 많은 화제가 되기를 바란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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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9
  • 함덕기 목사의 목회 메시지 /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예수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예수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인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역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 창세기를 시작으로 침례 요한의 예수를 향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외침을 거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은 시작도 예수님이 마지막도 예수님이시다. 구약이 오실 메시아로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면 신약 전체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재림 예수님만이 우리에 대한 확실한 하나님의 구원의 해결책이다. 지금은 예수님의 은혜는 천지를 진동할 만큼 넘쳐 나는 말은 많은데 ‘그 은혜를 추수하고자 하는 사람과 진실 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열정의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죄로 오염되고 혼탁해진 세상 속에서 넓은 길을 두고 예수님이라는 좁은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시간이 없다’라는 한마디로 예수님이라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세주에 최고의 축복잔치를 거절하고 있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북을 치고 장구를 쳐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적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전 미문 앞에서 손을 벌리며 은과 금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해 ‘나는 네게 줄 은도 금도 없다. 내게 있는 것은 예수님 이름뿐이다. 그 예수님 이름으로 걸으라’는 베드로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은과 금이 아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뿐이다. 우리의 일생을 통해 ‘내가 가진 것은 구세주 예수 이름 밖에 없다’라고 말 한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영원토록 할 말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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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2
  • 함덕기 목사의 목회메시지 / 예수 생명의 피에 대한 뜨거운 감사
    예수 생명의 피에 대한 뜨거운 감사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 받았을 때는 구원 얻은 기쁨과 자격 변화가 된 것에 감사하여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신앙생활 태도에 문제가 생겨난다. 상황에 의해 형식에 그치는 미지근해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경고하셨듯이 우리의 신앙은 미지근하지 말고 항상 열정적이어야만 한다. 계3:14~20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죄와 저주와 질병과 멸망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항상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주님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여 감사치 않는 것은 첫째 주님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이 세상의 허탄한 문화와 문명에 생각과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려운 일들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준 분의 은혜를 쉽게 잊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해 주시려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며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물질로 감사하고, 재능으로 감사하고, 몸으로 감사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한다. 속죄함도, 병 고치는 능력도, 새 방언으로 말함도 하나님 은혜를 구하는 기도도, 우리의 구원도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죗값을 대신 짊어지신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직분을 맡은 성도라 할지라도 감사가 없으면 주님과 관계가 없는 자이다. 오직 예수 십자가 피 대한 감사를 매일 매일 드려 영적인 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여의도순복음큰기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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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5
  • 장헌일 박사의 특별기고 / 초저출생·초고령사회, ‘한국형 돌봄민주주의’의 길을 묻다
    국회토론회에서 조안 트론트 교수와 함께 초저출생·초고령사회가 직면한 인구 위기 속에서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었다. 이제 돌봄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이며, 이를 위한 실천적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이자 ‘돌봄민주주의(Caring Democracy)’의 저자인 조안 트론토(Joan C. Tronto)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는 2일 국회에서 열린 돌봄민주주의 토론회에서 "돌봄의 위기는 민주주의 위기,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 정치는 시민을 돌봐야 하고, 민주 시민은 민주주의를 돌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트론토 교수는 저출생, 고령화, 돌봄 노동자 부족 현상을 단순한 인구·복지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로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경제성장과 효율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돌봄을 사회의 핵심 가치로 재배치해야 한다. 특히 저출생을 단순한 '출생아 수 감소'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돌봄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 고령화 역시 늘어난 기대수명에 맞춰 제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돌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자원은 바로 ‘시간’이다. 우리 사회는 시민들이 아이와 고령자,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통합돌봄이 진정한 '좋은 돌봄 정책'으로 자리 잡으려면 이용자의 요구를 세세히 살피고, 그들의 결정과 의사를 '권리'로 존중해야 한다. 차별과 방임 없이 안전하고 신뢰도 높은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선결 과제와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돌봄민주주의를 중심에 둔 실천적 논의가 확산되어야 한다. 돌봄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바라보고, ‘함께 돌봄(Caring with)’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치열하게 모색해야 한다. 둘째, 현장 중심의 연구와 적용이 시급하다. 의료·요양·복지 서비스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연계하는 통합돌봄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돌봄 노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종교계 등 민간 부문과의 협력 방안 및 한국 사회에 적합한 돌봄 체계의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 셋째, 철저하게 ‘이용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사회복지·의료·보건·주거지원 사업을 수요자의 욕구와 상황에 주목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도움을 원하는 이용자로부터 출발해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전문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돌봄 생태계와 안전망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넷째, 돌봄 거버넌스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 복지행정의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광역·기초지자체, 전문기관, 종교계를 비롯한 민간기관 간의 명확한 역할 조율과 협업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지역 밀착형·지역 주도형 복지 생태계를 만들고,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지역 돌봄 공동체를 활성화하며, 사회적경제 영역의 참여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 생애주기별 통합돌봄 사업을 체계화하고 공적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노인 계층을 시작으로 장애인, 정신질환자, 나아가 아동·청년·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 전반에서 단절 없는 돌봄과 공적 지지 시스템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왼쪽부터 신영전 교수, 김보영 교수, 장헌일 원장, 이관후 처장, 조안 트론트 교수, 장숙랑 교수, 정춘생 의원, 송다영 교수, 백선희 의원 통합돌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이제 막 마련되었을 뿐, 현장에 안착하기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돌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종교계 등 민간 협력 네트워크를 촘촘히 강화해야 한다. 지역 사회가 돌봄의 진정한 주체로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돌봄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회복되며, 시민이 함께 돌봄을 분담하는 문화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의 핵심 가치를 담은 ‘한국형 돌봄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이다. (장헌일 박사,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장, 저출산대책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한국지방자치학회 국회정책협력위원장, 신생명나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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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3
  • 장헌일 칼럼 / 선거 이후, 이제 다시 '마을'에서 예수를 사는 삶
    6.3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우리 마을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돌보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이제 투표함을 열던 긴장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일상과 지역 마을 공동체 속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선거 이후, 우리 교회와 성도가 나아가야 할 신앙의 방향을 함께 나눕니다. 첫째, 화평하게 하는 자의 사명은 갈등 봉합과 언어의 치유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존재했던 의견 대립과 긴장을 씻어내야 합니다. 내가 지지한 후보의 당락과 상관없이 비방과 정죄를 멈추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이 교회의 최우선 사명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9),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엡4:2~3)는 말씀처럼, 이제 대립의 언어를 멈추고 이웃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언어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승자와 패자의 성경적 태도는 겸손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것입니다 결과에 따른 희비가 엇갈리는 이때, 우리는 성취감과 상실감을 성경적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처럼 당선자나 지지자는, 교만과 승리주의를 내려놓고, 두려운 마음으로 지역 사회를 섬기도록 기도하는 겸손이 필요하며, 낙선자나 지지자는, 냉소나 분노에 머물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낙심한 이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셋째, 마을로 나아가는 이웃 사랑은 생활 복지와 돌봄의 실천입니다 선거를 통한 참여는 끝났지만,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신앙의 책무는 계속됩니다.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에 있어 시.군.구 중심의 기초지방자치단체으 확고한 정책 의지와 읍.면.동의 현장에서 통합돌봄의 실행의지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1인가구를 비롯한 고독사 위기 가구, 돌봄 사각지대의 어르신과 장애인 그리고 아동과 청소년 등 '진짜 이웃'의 삶을 살피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눅 10:36~37)와 가난한 이웃을 위한 모퉁이(페아 Pe’ah)법(레19:9~10) 말씀처럼, 지역 사회적 협동조합, 마을 돌봄 활동에 관심을 두고 교회의 공간과 자원을 '공간 복지'의 통로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넷째, 지도자를 위한 기도와 청지기적 감시는 공의와 정의의 실현입니다 새롭게 선택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정쟁에 매몰되지 않고, 진정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섬기는 리더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그들이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도자를 위한 중보기도(딤전 2:1~2, 잠29:2) 말씀처럼, 맹목적인 순종을 넘어, 지도자들이 청지기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하며 건강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교회의 부르심은 모세의 지팡이를 투표소 안에서 끝나지 않고, 투표소 밖 '우리 마을 골목길'에서 비로소 예수의 삶으로 시작됩니다. 정치적 해석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장헌일 원장(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신생명나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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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8
  • 장헌일 칼럼 / 초저출생·초고령 사회, 풀뿌리 민주주의의 희망은 '투표'라는 모세의 지팡이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17개 시·도 교육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함께 치러지는 중요한 선거다. 한국교회는 정치적 중립과 공직선거법을 준수하면서도,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해 지역사회를 섬길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주민의 참여, 즉 투표율에 달려 있다. 이번 사전투표율은 제8회 지방선거(20.62%)보다 2.89%포인트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지방선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비록 2022년 제20대 대선 사전투표율(36.93%)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지역 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방자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냉철한 판단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주민들에게 실망과 불신을 안겼고, 이는 곧 정치 혐오와 낮은 투표율(54~60% 수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실망감 때문에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풀뿌리 정치가 바로 서야 정치 혁신과 개혁도 가능하다. 지방선거는 미래의 국가 지도자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정치적 인큐베이터'라는 점에서 유권자에게 부여된 신성한 사명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초저출생·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라 '돌봄통합지원법'이 본격 시행되는 첫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결정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갈등을 넘어 국민 대통합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 혁신과 개혁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투표하는 유권자이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투표는 홍해를 갈랐던 '모세의 지팡이'와 같다. 투표를 통해 부정부패를 걷어내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실천되는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주민자치와 생활자치를 실현하고, 참여와 공정으로 행복한 마을 정치를 이끌어갈 참된 일꾼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이 선출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장헌일 박사(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장, 신생명나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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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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