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라 함께 가는 길
길은 눈에 보이는 방향이 있고 목적지가 있지만 갈길이 있지만 시간이라는 길은 눈으로 볼 수 없어 방향을 잡기도 어렵고 목적지를 찾기도 어렵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다.
성경 마태복음 7장13-14절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고 했다.
요즘 여의도순복음교회 큰 목사라는 이유로 나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심지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큰 목사니 대우 잘 받고 배부르고 평안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협착해 보이지도 않고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그게 아닌데 하고 부정해 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걷고 있는 길의 주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주 예수님 가신 십자가 고난의 길과 내 가는 길을 생각해 본다. 양손과 발에 못 박힌 상흔, 머리에는 가시면류관, 허리에는 굵은 창자욱, 어깨에는 무거운 십자가. 조롱의 소리, 멸시와 천대의 소리, 욕하고 무시하는 소리 이것보다 더 협착한 길이 어딘가에 있을까?
나는 요즘 공중에 붕 떠서 정지된 상황에서 뒤와 앞을 본다. 주님이 가신 길에 비하면 나의 길은 너무 편안하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아니 미안하고 죄송할 만큼 주님 앞에 부끄럽기만 하다. 나는 내가 걷던 길을 돌이켜 주님이 가신 그 길로 다시 돌아온다.
나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죄로부터 자유함으로 평안하지만 주의 교회와 주님의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십자가의 삶을 사는 자로서는 절대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기도하라 하면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하라 하면 사랑할 수 있고, 전도하라 하면 전도할 수 있고, 복음을 전하라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말씀 앞에 목숨을 내 놓으라면 내놓을 수 있는, 바람이 불면 그 방향대로 움직이는 갈대와 같이 주 우리 예수님 앞에 전천후의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에 너무나 완악한 나의 육신 때문에 항상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앞으로도 내가 걷는 길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면 난 더 고개를 숙이고 나를 낮출 것이고, 내가 걷는 길에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는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주님의 고난에 나를 동참시켜 달라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리라 이를 깨문다.
자꾸 시간이 지나감이 아쉽다. 말씀대로 살고 싶어도 육신이 기다려 주지 않는 때가 성큼성큼 다가선다. 주님의 생각을 알아서 천국을 향한 황금길. 그 길이 내 눈앞에 활짝 펼쳐지는 그날이 오기까지 난 좁고 협착한 길을 걸으리라. 더 좁은 문으로 들어가리라. 주님 가신 십자가 고난의 길이다.
주님이 가신 길은 인류의 영혼 구원을 보며 기쁘게 생각하며 가셨던 그 길, 엉겨 붙은 보혈, 눈물자국 뒤범벅이 된 고난의 십자가 길이다. 주 예수님 나도 그 길을 십자가 생명의 길을 걸으며 나를 통해 많은 영혼이 주 예수를 만나 영원히 살도록 나도 끝까지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가고 또 가고 주와 함께 걷게 되기를 소망한다.
빌1장20-21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