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2(금)
 

함덕기 목사 메시지.jpg

 

나의 가는 길


시간은 흐르는 것입니다. 만남을 갖게하고 또 흘러 보내는 헤어짐. 시간이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길'과 같다. 길은 눈에 보이는 방향이 있고 목적지가 있지만 시간이라는 길은 눈으로 볼 수 없어 방향을 잡기도 어렵고 목적지를 찾기도 어렵다.


성경은 마 7:13~1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요즘 큰 교회 목사라는 이유로 다들 부러워하기도 하고 심지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큰 교회 목사니 등 따습고 배부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협착해 보이지도 않고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그게 아닌데 하고 부인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의 주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주님 가신 길을 생각해본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 허리에는 굵은 창 자국, 어깨에는 무거운 십자가. 조롱하는 소리, 멸시와 천대의 소리, 비웃는 죄인들의 소리~


이보다 더 협착하고 좁은 길이 또 있을까? 이 길에 비하면 나의 길은 너무 편안하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주님 앞에 부끄럽기만 하다. 나는 내가 걷던 길을 돌이켜 주님이 가신 그 길로 다시 걷기를 원한다. 나는 이 땅에 목사로 사는 동안 죄로부터 자유함으로 평안하지만 주님의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십자가의 삶을 사는 자로서는 절대 편안하지는 못할 것이다.


용서하라 하면 용서하고, 기도하라 하면 기도할 수 있고, 축복하라 하면 축복할 수 있고, 사랑하라 하면 사랑할 수 있고, 예수의 피 복음을 전하라 하면 피의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말씀 앞에 목숨을 내 놓으라면 내놓을 수 있고, 바람이 불면 그 방향대로 움직여 따라가는 갈대와 같이 주님 앞에 진실의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살기에 너무나 완악한 나의 육신 때문에 항상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앞으로도 내가 걷는 길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면 난 더 고개를 숙이고 나를 낮출 것이고, 내가 걷는 길에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는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며 주님의 고난에 나를 동참시켜 달라고 몸부림치려 한다. 함께한 시간이 지나가게 됨이 아쉽다. 말씀대로 살고 싶어도 육신이 기다려주지 않는 때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더 아쉽다. 천국을 맛보았을 때 주님과 함께 걷던 황금길. 그 길이 내 눈앞에 활짝 펼쳐지는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좁은 길을 걸으리라. 더 좁은 문으로 들어가리라.


주님 가신 길 십자가 핏물 자욱이 뒤범벅이 된 주님이 따라오라 하신 고난의 길. 나도 그 길을 끝까지 주의 성령과 함께 걷기를 소망한다.

태그

전체댓글 0

  • 4955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함덕기 목사의 목회메시지 / 나의 가는 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